드라이어 명가와 스킨케어가 만든 머리카락의 답
파나소닉×SISI, 1년 만의 이례적 콜라보
일본 미용가전의 상징 같은 브랜드 파나소닉이, 2020년 창업한 스킨케어 스타트업 SISI와 손을 잡고 헤어케어 브랜드 '유나이트!(UNITE!)'를 내놓는다. 오는 11월 6일 샴푸, 트리트먼트, 헤어밀크 세 가지 제품으로 시장에 나온다는 소식인데, 이 조합이 눈에 띄는 이유는 브랜드 자체보다 만들어진 속도에 있다. 두 회사가 협업을 공식화한 것은 2025년 10월, 파나소닉이 SISI에 출자하며 파트너십을 발표한 시점이었고, 거기서 정확히 1년 만에 제품 출시까지 이어졌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이 출자 발표 이후 몇 년째 소식이 없거나 조용히 무산되는 경우를 숱하게 봐온 업계라면, 이 속도 자체가 이례적으로 읽힐 법하다. 파나소닉 뷰티·퍼스널케어 사업부장 나카무라 마사하루는 남성용 면도기 설계로 커리어를 시작해 사내 최초의 3D 개발을 이끈 인물이고, SISI 대표 사와다 미카는 게이오기주쿠대를 졸업하고 컨설팅사와 외국계 소비재 기업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거쳐 2020년 SISI를 창업한 인물이다. 드라이어와 헤어아이롱으로 이미 잘 알려진 파나소닉이 처음으로 화장품 영역, 그중에서도 헤어케어를 택했다는 사실은 미용가전 회사가 그리는 다음 그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무엇이 달라졌나
파나소닉이 헤어케어 카테고리를 첫 협업 대상으로 택한 배경부터 눈여겨볼 만하다. 파나소닉 뷰티·퍼스널케어 사업부장 나카무라 마사하루는 이번 협업의 이유를 자사 미용가전 중 가장 인지도와 기여도가 높은 축이 2005년 출시된 헤어드라이어 '나노케어'라는 점에서 찾았다. 나노케어는 일본 내 3만엔대 고가 드라이어 시장을 주도해온 제품으로, 파나소닉의 드라이어 시장 점유율은 약 60%에 이른다. 즉 파나소닉은 소비자가 이미 신뢰하고 있는 '헤어'라는 영역에서 화장품으로 사업을 넓히는 쪽을 택했고, 이번에 나온 유나이트!의 샴푸·트리트먼트·헤어밀크 3종은 그 확장의 첫 결과물인 셈이다. SISI 쪽에서 가져온 것은 원격 피부 분석 서비스 'SISI LAB'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뷰티 설계 기술이다. 이 진단 기술의 뿌리는 사와다 대표가 회사원 시절 스킨케어 브랜드 론칭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이며, 이후 누구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미용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SISI를 창업한 맥락과 이어진다. 하드웨어인 가전과, 진단과 처방을 다루는 소프트한 기술이 만나 하나의 브랜드로 나온 것인데, 이는 두 회사가 각자 따로 갖고 있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조합이다. 파나소닉이 가전이라는 틀을 벗어나 화장품까지 포괄하는 '토털 뷰티 체험'을 설계하겠다고 밝힌 지점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왜 지금인가
이 협업의 시점이 눈에 띄는 것은 일본 헤어케어 시장의 흐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 헤어케어 시장은 2025년 기준 약 72억 달러 규모로, 연 3.7~4.2%씩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성장을 이끄는 키워드는 AI 기반 맞춤형 제품, 천연 성분, 온라인 구독 서비스인데, 이는 SISI가 'SISI LAB'을 통해 쌓아온 개인 맞춤 진단 역량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영역이다. 파나소닉처럼 하드웨어 중심의 대기업이 이런 흐름에 대응하려면 처방·진단 기술을 처음부터 자체적으로 쌓기보다, 이미 그 역량을 갖춘 스타트업과 손을 잡는 쪽이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는 선택이다. SISI 대표 사와다 미카는 대기업과의 협업이 출자로만 끝나고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를 여러 차례 지켜봤다고 밝혔는데, 이는 이번 협업이 왜 예외적으로 읽히는지를 보여주는 배경이기도 하다. 사내 벤처 제도를 활용해 새 조직을 꾸린 경험이 있는 나카무라 사업부장의 이력 역시, 대기업 안에서도 속도감 있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 문화가 이번 성사의 배경이 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SISI는 2020년 창업 이후 누적 조달액이 약 3.2억엔 규모인 초기 단계 스타트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나소닉 같은 대기업의 출자와 유통력이 더해지는 이번 협업은 SISI에도 성장 궤도를 크게 앞당길 수 있는 기회로 읽힌다.
다음에 볼 것
유나이트!는 11월 6일 샴푸, 트리트먼트, 헤어밀크 3종으로 먼저 시장에 나온다. 첫 라인업이 헤어에 한정돼 있는 만큼, 다음 관전 포인트는 이 협업이 스킨케어나 다른 화장품 카테고리로도 확장될지 여부다. 파나소닉이 이번 협업을 '화장품을 포함한 토털 뷰티 체험'의 시작으로 규정한 만큼, 유나이트!가 단발성 콜라보에서 끝나지 않고 시리즈로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SISI 입장에서도 이번 협업은 2020년 창업 이후 처음으로 대기업의 유통력과 인지도가 더해지는 계기인 만큼, 유나이트!의 초기 반응이 SISI LAB 기반 진단 기술을 다른 제품군으로 얼마나 빠르게 확장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격대나 구체적 판매 채널처럼 아직 공개되지 않은 세부 사항은 출시일이 가까워지며 순차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고, 특히 파나소닉이 강세를 보여온 프리미엄 가전 유통망을 유나이트!가 얼마나 함께 활용하는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대기업과 화장품 스타트업의 협업치고 1년이라는 시간은 이례적으로 짧았다는 점에서, 미용가전과 화장품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 흐름이 유나이트! 이후에도 이어질지, 나아가 비슷한 조합을 시도하는 다른 가전·뷰티 기업들의 참고 사례로 남을지가 다음으로 확인해볼 지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