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고르고 매장이 판다, 취향의 주인은 누구인가
에이전틱 커머스, 취향의 주인이 바뀐다
초청장 26장, 완전 비공개 포럼, 도쿄 진구마에 CAT STREET의 호텔 다이닝까지 — 패션업계 경영진들이 모이는 방식부터 평소와 달랐다. 9월 4일 열린 이 자리는 2월에 이어 두 번째로 꾸려진 경영진 전용 포럼이었고, 쇼피파이 재팬이 협찬사로 이름을 올렸다. 공개 세미나가 아니라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는 비공개 자리를 택한 것부터가, 이 의제를 공개적으로 떠들기보다 같은 업종 경영진끼리 조용히 입을 맞춰야 할 문제로 다뤘다는 뜻이다. 주제는 하나, '에이전틱 커머스'. 사람이 매장을 돌아보고 원단을 만져보고 사이즈를 가늠하던 그 자리에, 이제는 AI 에이전트가 먼저 들어와 상품을 찾고 비교하고 때로는 결제 단추까지 대신 누른다. 패션은 원래 매장에서 옷을 걸쳐보고 점원과 대화하며 취향을 발견하는, 사람과 물건이 직접 만나는 업종이었던 만큼, 그 발견의 과정을 AI가 먼저 가로채는 흐름 앞에서 이들이 느낀 긴장감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반년 전엔 가능성을 점치는 자리였다면, 이번엔 '당장 뭘 정리해야 하는가'를 묻는 자리로 바뀌었다는 것이 참석자들 사이의 공통된 분위기였고, 그 변화의 속도 자체가 이 업계가 체감하는 위기감의 크기를 보여준다.
무엇이 달라졌나
세션의 발제를 맡은 AUTHENTIC AI 대표 우에다 토루는 AI를 매개로 한 구매 경험을 3단계로 정리했다. 2025년은 챗 안에서 상담부터 결제까지 한 번에 끝내려던 실험의 해였고, 2026년 현재는 상품을 찾고 비교하는 역할만 AI가 맡고 결제는 브랜드 자사 사이트에서 마무리하는 방식이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는 이를 "AI가 사는 것"에서 "AI가 고르고 매장이 파는 것"으로의 전환이라 불렀고, 다음 단계로는 미리 정해둔 범위 안에서 에이전트가 스스로 구매까지 판단하는 '자율 구매'가 보편화될 것이라 내다봤다. 이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발언자의 이력에 있다. 그가 이끄는 AUTHENTIC AI는 원래 월드그룹의 DX·AI 자회사 오픈패션이 사내용으로 키워온 생성AI '메조 AI'를 2024년 분사해 외부에 연 회사다. 자사 안에서 이미 기획·판매·분석 업무에 6개 직능, 40체의 에이전트를 실제로 배치해 운영 중이라는 점이 이 발언을 '예측'이 아니라 '진행 보고'로 읽게 만든다. 그는 브랜드가 지금 당장 챙겨야 할 일도 세 가지로 좁혔다. 가격·재고·사이즈·색상·활용 장면까지 AI가 읽어낼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한 상품 카탈로그, AI가 상품을 찾아와도 결제와 회원 데이터는 자사 화면에 남기는 체크아웃 주권, 그리고 쇼피파이·구글 진영과 오픈AI·스트라이프 진영처럼 병존하는 여러 규격에 모두 연결할 수 있는 대응력과 악성 봇을 걸러내는 인증 체계다. "AI 위에서 팔리는 것"과 "브랜드로서 바르게 팔리는 것"은 다르다는 그의 말은, 데이터 주권을 안 챙기면 매출은 늘어도 브랜드가 남는 게 없을 수 있다는 경고에 가깝다.
왜 지금인가
이 질문이 지금 터져 나오는 이유는 세 방향에서 동시에 신호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소비자 쪽 데이터다. 미국 전자상거래에서 AI를 거쳐 들어오는 트래픽은 2024년에서 2025년 사이 4700% 가까이 뛰었고, 모건스탠리는 2030년까지 3850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에이전틱 채널로 옮겨갈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자 10명 중 7명이 AI의 자동 구매 판단에 긍정적이라는 조사 결과까지 겹치면서, 이건 더 이상 소수 얼리어답터의 실험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생겼다. 두 번째는 플랫폼 경쟁 구도다. 쇼피파이·구글이 만든 범용 커머스 프로토콜과 오픈AI·스트라이프가 만든 결제 규격이 동시에 몸집을 불리고 있는데, 이 시기에 어느 한쪽에만 베팅하면 나중에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경영진들이 '어느 기술을 쓸까'보다 '둘 다 열어두면서 주권은 어떻게 지킬까'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는 패션이라는 업종의 특수성이다. 가격과 재고는 숫자라 AI가 읽기 쉽지만, 원단의 촉감이나 핏이 몸에 떨어지는 느낌, 색이 조명 아래서 달라 보이는 정도처럼 패션의 핵심 가치는 원래 텍스트로 옮기기 어려운 물성의 영역에 있다. 다른 업종보다 늦게, 더 조심스럽게 이 흐름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만큼 2월에 이어 반년 만에 다시 경영진을 불러 모을 만한 긴장감이 쌓여 있었던 셈이다.
다음에 볼 것
당장 확인할 만한 지점은 메조 AI다. 이 포럼이 열린 9월 4일 같은 날 리서치 프리뷰, 즉 연구개발 단계의 버전이 공개됐다. 아직 정식 출시가 아니라는 뜻이고, 그래서 다음으로 지켜볼 것은 이 프리뷰가 언제 정식 서비스로 넘어가는지, 그리고 에이전트끼리 서로 대화하며 거래를 조율하는 다음 단계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는지다. 둘째로 볼 지점은 다른 브랜드들의 움직임이다. 이번 자리에 모인 26명이 각자의 회사에서 카탈로그 정비와 자사 체크아웃 강화에 나서는지, 혹은 반대로 AI 플랫폼에 상품 노출만 맡기고 손을 놓는 쪽을 택하는지에 따라 몇 년 안에 승자와 뒤처진 쪽이 갈릴 수 있다. 셋째는 규격 전쟁의 결과다. 쇼피파이·구글 쪽과 오픈AI·스트라이프 쪽 중 어느 프로토콜이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는지, 아니면 끝까지 병존하는지가 브랜드의 개발 비용과 운영 부담을 크게 바꿔놓을 변수다. 2월과 9월, 반년 간격으로 이어진 이 포럼이 다음에도 같은 주기로 열린다면, 그 자리에서 다뤄질 의제가 '전망'에서 '정산'으로 바뀌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 흐름의 끝에서 독자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AI가 무엇을 팔았는가가 아니라, 사람의 취향이 AI의 추천과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남을 수 있는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