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3 · FRI SEOUL VOL.02 / 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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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 2026.10.06 6 min read Irang 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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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 된 옷이 다시 피어난, 모리나가의 25년

파리 회고전과 SS27 'SKIN'이 던진 질문

도쿄 디자이너 모리나가 쿠니히코가 이끄는 ANREALAGE가 2026년 10월 1일 파리에서 25번째 파리 컬렉션을 기념하는 회고전 'JUST AN REAL AGE'를 열었다. 같은 주, 그는 전자종이 기술로 옷의 색이 완전히 사라지고 재가 된 뒤 다시 피어나는 무대, 2027년 봄·여름(SS27) 컬렉션 'SKIN'을 공개했다. 2003년 브랜드를 시작한 지 23년, 파리 데뷔 25번째 시즌을 맞은 이 디자이너가 '회고'와 '신작'을 같은 주에 나란히 꺼내놓은 이유는 단순한 기념일 챙기기가 아니다. 그는 패션과 기술 사이의 경계가 "이미 사라졌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사람이고, 브랜드 이름 자체도 '리얼(real)'과 '언리얼(unreal)'을 'AN'이라는 부정관사로 잇는다. 이번 두 개의 무대, 지난 23년을 되짚는 회고전과 그 철학의 최신판인 'SKIN'을 동시에 내놓은 선택은 결국 그 말을 한 번에 증명하려는 자리였다. 어린 시절 도라에몽의 4차원 주머니에서 받은 인상을 "옷을 통해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해온 그에게, 일상과 비일상이 "서로 살짝 떨어져 앉아 있다"는 감각은 20여 년째 변하지 않은 출발점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ANREALAGE가 SS27 무대에서 실제로 보여준 것은 '색이 변하는 옷'이 아니라 '옷이 통째로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장면이었다. 이번 컬렉션에 쓰인 'E Ink Prism 3' 스케일은 전자종이 기술을 비늘 모양으로 잘라 옷 표면에 붙인 것으로, 한 벌의 드레스에 많으면 2,000개, 적어도 1,000개가 들어간다. 모리나가는 이 스케일의 발상을 생물의 피부에서 색을 바꾸는 색소세포(크로마토포어)와 디지털 아바타의 이미지에서 가져왔다고 밝혔는데, 그 말대로 런웨이 위에서 모델들의 옷은 색을 모두 잃고 잿빛으로 바스러진 뒤, 다시 색이 번지듯 피어났다. 이 장면이 왜 새로운가는 그가 2020년 FENDI와 협업했던 포토크로믹(자외선 감응) 텍스타일과 비교하면 또렷해진다. 그때는 자연광, 즉 외부 조건에 반응해 옷이 서서히 변하는 수동적 변화였다. SKIN은 반대로 전자종이가 능동적으로 신호를 받아 옷 전체의 색과 상태를 즉시, 무대 위 연출 의도대로 바꾼다. 수동적 소재 실험에서 능동적 디스플레이로, 그가 20여 년 추적해온 '패션이 스스로 움직이는 매체가 되는 지점'이 한 단계 더 좁혀진 셈이다. FENDI와의 협업으로 그가 이 브랜드가 파트너십을 맺은 첫 일본인 디자이너라는 기록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왜 지금인가

웨어러블과 스마트 글래스 협업, 몰입형 무대 연출이 요즘 패션위크에서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리나가의 작업이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는 유행이 따라오기 훨씬 전인 2003년부터 옷과 기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해왔고, 이번 회고전은 그 23년의 누적을 한 자리에서 확인시키는 자리다. 파리 갈레리 페로탱에서 10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리는 'JUST AN REAL AGE'는 2015년 봄·여름 시즌부터 이어진 25개 파리 컬렉션을 한 번에 모아 보여주는데, 이는 한 디자이너가 같은 질문(기술과 옷의 경계)을 25번의 시즌 동안 집요하게 반복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회고를 혼자 치르지 않고 콜레트의 창립자 사라 앙델만에게 큐레이션을 맡긴 선택도 의미가 크다. 1997년 파리에 콜레트를 열어 2017년 문을 닫기까지 스트리트와 하이패션, 라이프스타일의 경계를 허문 셀렉션으로 한 시대를 만든 인물이 지금의 '자스트 언 아이디어' 컨설턴시로 모리나가의 25년을 정리한다는 것은, 패션사(史) 안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경계 파괴자 두 명이 만나는 장면이다. 여기에 다프트 펑크의 프로듀서 토마 방갈테르가 만든 사운드스케이프가 더해지면서, 이번 무대는 패션계보다 음악·문화 신(scene) 전체가 반응할 재료를 갖췄다. 비욘세의 두 차례 월드투어 무대와 호소다 마모루 애니메이션 '벨'의 주인공 의상을 그가 디자인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모리나가의 영향력은 이미 패션위크 담장 바깥의 대중문화까지 번져 있었고, 이번 25주년은 그 흐름이 공식적으로 정리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지금이다.

다음에 볼 것

지금 파리에 있지 않은 독자가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흐름을 따라가고 싶다면 짚어둘 지점은 있다. 회고전 'JUST AN REAL AGE'는 10월 5일까지만 열리는 단기 전시라 현장 공개는 이미 마감 시점에 가깝고, SS27 'SKIN' 컬렉션 역시 9월 29일 파리 라디오 음악의 집(메종 드 라 라디오 에 드 라 뮈지크)에서 이미 한 차례 공개를 마쳤다. 즉 이번 사이클의 핵심은 앞으로 벌어질 '현장'이 아니라, 이 기록이 어떻게 소비되고 퍼지는가에 있다. 관심 있게 볼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E Ink Prism 3' 스케일 기술이 런웨이의 일회성 스펙터클로 끝나지 않고, 실제 유통되는 기성복이나 다른 브랜드의 협업 소재로 넘어가는지다. 모리나가는 이미 FENDI와의 협업으로 실험적 소재를 상업 라인에 접목한 전례가 있어, SKIN의 전자종이 스케일도 같은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낮지 않다. 다른 하나는 사라 앙델만처럼 한 시대를 큐레이션한 인물이 후배 디자이너의 회고를 설계하는 방식이 하나의 흐름이 되는가다. 콜레트가 문을 닫은 지 9년이 지난 지금, 그 유산이 다른 브랜드의 기념전에 계속 호출된다면 이는 파리 패션 신 자체가 자기 역사를 다시 쓰는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기술이 옷의 물성 자체를 바꾸는 실험과, 그 실험을 큐레이션하는 사람의 계보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 25주년은 끝이 아니라 다음 장의 서문으로 읽어야 한다.

Inside ANREALAGE'sAnniversary Paris RetrospectiveYetKunihiko MorinagaANREALAGELVMH Pr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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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 된 옷이 다시 피어난, 모리나가의 25년

파리 회고전과 SS27 'SKIN'이 던진 질문

2026.10.06 · 6 min · Irang

도쿄 디자이너 모리나가 쿠니히코가 이끄는 ANREALAGE가 2026년 10월 1일 파리에서 25번째 파리 컬렉션을 기념하는 회고전 'JUST AN REAL AGE'를 열었다. 같은 주, 그는 전자종이 기술로 옷의 색이 완전히 사라지고 재가 된 뒤 다시 피어나는 무대, 2027년 봄·여름(SS27) 컬렉션 'SKIN'을 공개했다. 2003년 브랜드를 시작한 지 23년, 파리 데뷔 25번째 시즌을 맞은 이 디자이너가 '회고'와 '신작'을 같은 주에 나란히 꺼내놓은 이유는 단순한 기념일 챙기기가 아니다. 그는 패션과 기술 사이의 경계가 "이미 사라졌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사람이고, 브랜드 이름 자체도 '리얼(real)'과 '언리얼(unreal)'을 'AN'이라는 부정관사로 잇는다. 이번 두 개의 무대, 지난 23년을 되짚는 회고전과 그 철학의 최신판인 'SKIN'을 동시에 내놓은 선택은 결국 그 말을 한 번에 증명하려는 자리였다. 어린 시절 도라에몽의 4차원 주머니에서 받은 인상을 "옷을 통해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해온 그에게, 일상과 비일상이 "서로 살짝 떨어져 앉아 있다"는 감각은 20여 년째 변하지 않은 출발점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ANREALAGE가 SS27 무대에서 실제로 보여준 것은 '색이 변하는 옷'이 아니라 '옷이 통째로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장면이었다. 이번 컬렉션에 쓰인 'E Ink Prism 3' 스케일은 전자종이 기술을 비늘 모양으로 잘라 옷 표면에 붙인 것으로, 한 벌의 드레스에 많으면 2,000개, 적어도 1,000개가 들어간다. 모리나가는 이 스케일의 발상을 생물의 피부에서 색을 바꾸는 색소세포(크로마토포어)와 디지털 아바타의 이미지에서 가져왔다고 밝혔는데, 그 말대로 런웨이 위에서 모델들의 옷은 색을 모두 잃고 잿빛으로 바스러진 뒤, 다시 색이 번지듯 피어났다. 이 장면이 왜 새로운가는 그가 2020년 FENDI와 협업했던 포토크로믹(자외선 감응) 텍스타일과 비교하면 또렷해진다. 그때는 자연광, 즉 외부 조건에 반응해 옷이 서서히 변하는 수동적 변화였다. SKIN은 반대로 전자종이가 능동적으로 신호를 받아 옷 전체의 색과 상태를 즉시, 무대 위 연출 의도대로 바꾼다. 수동적 소재 실험에서 능동적 디스플레이로, 그가 20여 년 추적해온 '패션이 스스로 움직이는 매체가 되는 지점'이 한 단계 더 좁혀진 셈이다. FENDI와의 협업으로 그가 이 브랜드가 파트너십을 맺은 첫 일본인 디자이너라는 기록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왜 지금인가

웨어러블과 스마트 글래스 협업, 몰입형 무대 연출이 요즘 패션위크에서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리나가의 작업이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는 유행이 따라오기 훨씬 전인 2003년부터 옷과 기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해왔고, 이번 회고전은 그 23년의 누적을 한 자리에서 확인시키는 자리다. 파리 갈레리 페로탱에서 10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리는 'JUST AN REAL AGE'는 2015년 봄·여름 시즌부터 이어진 25개 파리 컬렉션을 한 번에 모아 보여주는데, 이는 한 디자이너가 같은 질문(기술과 옷의 경계)을 25번의 시즌 동안 집요하게 반복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회고를 혼자 치르지 않고 콜레트의 창립자 사라 앙델만에게 큐레이션을 맡긴 선택도 의미가 크다. 1997년 파리에 콜레트를 열어 2017년 문을 닫기까지 스트리트와 하이패션, 라이프스타일의 경계를 허문 셀렉션으로 한 시대를 만든 인물이 지금의 '자스트 언 아이디어' 컨설턴시로 모리나가의 25년을 정리한다는 것은, 패션사(史) 안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경계 파괴자 두 명이 만나는 장면이다. 여기에 다프트 펑크의 프로듀서 토마 방갈테르가 만든 사운드스케이프가 더해지면서, 이번 무대는 패션계보다 음악·문화 신(scene) 전체가 반응할 재료를 갖췄다. 비욘세의 두 차례 월드투어 무대와 호소다 마모루 애니메이션 '벨'의 주인공 의상을 그가 디자인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모리나가의 영향력은 이미 패션위크 담장 바깥의 대중문화까지 번져 있었고, 이번 25주년은 그 흐름이 공식적으로 정리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지금이다.

다음에 볼 것

지금 파리에 있지 않은 독자가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흐름을 따라가고 싶다면 짚어둘 지점은 있다. 회고전 'JUST AN REAL AGE'는 10월 5일까지만 열리는 단기 전시라 현장 공개는 이미 마감 시점에 가깝고, SS27 'SKIN' 컬렉션 역시 9월 29일 파리 라디오 음악의 집(메종 드 라 라디오 에 드 라 뮈지크)에서 이미 한 차례 공개를 마쳤다. 즉 이번 사이클의 핵심은 앞으로 벌어질 '현장'이 아니라, 이 기록이 어떻게 소비되고 퍼지는가에 있다. 관심 있게 볼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E Ink Prism 3' 스케일 기술이 런웨이의 일회성 스펙터클로 끝나지 않고, 실제 유통되는 기성복이나 다른 브랜드의 협업 소재로 넘어가는지다. 모리나가는 이미 FENDI와의 협업으로 실험적 소재를 상업 라인에 접목한 전례가 있어, SKIN의 전자종이 스케일도 같은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낮지 않다. 다른 하나는 사라 앙델만처럼 한 시대를 큐레이션한 인물이 후배 디자이너의 회고를 설계하는 방식이 하나의 흐름이 되는가다. 콜레트가 문을 닫은 지 9년이 지난 지금, 그 유산이 다른 브랜드의 기념전에 계속 호출된다면 이는 파리 패션 신 자체가 자기 역사를 다시 쓰는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기술이 옷의 물성 자체를 바꾸는 실험과, 그 실험을 큐레이션하는 사람의 계보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 25주년은 끝이 아니라 다음 장의 서문으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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