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바브, 소란을 멈추고 조각을 택하다
스웨덴 브랜드의 SS27, 퍼포먼스 대신 실루엣
2026년 9월 30일 파리에서 열린 스프링/서머 2027 컬렉션에서, 스웨덴 브랜드 Avavav는 지금까지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모델이 런웨이에서 의도적으로 넘어지고, 쓰레기로 뒤덮인 캣워크를 걷고, 관객이 옷을 찢는 퍼포먼스로 시즌마다 화제를 만들어온 이 브랜드가 이번에는 아무 사건도 벌이지 않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Beate Skonare Karlsson은 옷 자체를 다시 무대 중심에 세웠다. 2021년 설립 이후 Avavav의 정체성은 패션의 허상을 폭로하는 퍼포먼스 그 자체에 가까웠고, 그 전략은 매 시즌 SNS에서 입소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해왔다. 그런데 이번 SS27에서는 서사도 사건도 없이 형태와 실루엣만 남았다. 바이럴을 가장 잘 만들어온 브랜드가 스스로 바이럴을 내려놓은 순간, 오히려 그 선택 자체가 패션위크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이 된 셈이다. 조각과 세라믹을 전공한 Karlsson이 패션을 다루는 방식은 원래도 다른 브랜드와 달랐는데, 이번에는 그 조형적 감각이 퍼포먼스라는 장치 없이도 독자적으로 통하는지를 시험하는 자리가 됐다. 패션위크에서 매 시즌 더 자극적인 장면을 기대받던 브랜드가 아무 사건 없이 옷만 들고 나온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자 도박이기도 하다.
무엇이 달라졌나
가장 뚜렷한 변화는 사건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SS23에서는 모델이 런웨이 위에서 의도적으로 넘어지는 장면을 연출했고, FW23에서는 가방이 찢기고 힐이 부러지는 등 의복이 해체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FW24에서는 관객이 직접 쓰레기를 던지는 참여형 퍼포먼스로까지 이어졌다. 이런 연속된 사건들은 매 시즌 화제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옷보다 사건이 먼저 기억되는 부작용도 낳았다. SS27은 이 패턴을 끊었다. Karlsson은 Avavav를 "계속 커지는 피규어 가족"에 비유하며 "매 시즌 모든 것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우리만의 형태를 찾아내고, 그것을 진화시키면서 그 주변에 새로운 캐릭터를 들여놓고 싶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컬렉션에서는 플리츠 기법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실루엣이 중심에 섰다. 튜브형 플리츠 스커트는 슬링키 장난감처럼 늘어났다 줄어드는 형태로 만들어졌고, 또 다른 상의는 만화 캐릭터처럼 과장된 A라인으로 몸통을 감쌌다. 브랜드의 상징인 라바백은 더 이상 가방으로만 머물지 않고 스커트 실루엣으로 재해석됐으며, 반복적으로 쓰이던 네 손가락 모티프는 포켓과 봉제선 곳곳에 다시 등장해 이전 시즌과의 연속성을 분명히 했다. 룩북 역시 화려한 사진 연출 없이 갤러리에 놓인 조각처럼 옷만 담아낸 점이 이번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왜 지금인가
이 전환이 눈에 띄는 이유는 타이밍이다. 패션위크가 매 시즌 더 큰 스펙터클을 요구하는 흐름 속에서, 정작 그 스펙터클을 가장 능숙하게 다루던 브랜드가 스스로 볼륨을 낮췄기 때문이다. 바이럴 모먼트는 짧은 기간 안에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매 시즌 전작보다 더 센 자극을 요구받는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넘어지는 모델, 부서지는 가방, 쓰레기를 던지는 관객까지 이미 다 보여준 브랜드가 다음 시즌에 또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는가는 업계 안팎에서 실제로 제기되던 유효한 질문이었다. Karlsson의 답은 "더 센 것"이 아니라 "다른 축"이었다. 매번 세계관을 지우고 새로 짓는 대신, 이미 만들어 둔 형태들을 자산으로 삼아 누적해 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는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가 바이럴 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조형 언어로 지속 가능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도 읽힌다. 퍼포먼스로 이름을 알린 브랜드일수록 결국 어느 시점에는 옷 자체가 그 이름값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기 마련이고, Avavav에게는 설립 6년 차를 맞는 SS27이 바로 그 시점이었던 셈이다. 쓰레기를 던지고 옷을 찢는 장면은 한 번은 충격이지만 세 번째, 네 번째가 되면 예측 가능한 공식이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이번 전환은 소진되기 전에 방향을 바꾼 선제적 판단으로도 볼 수 있다.
다음에 볼 것
관전 포인트는 이 조형 중심 전략이 다음 시즌에도 이어질지, 그리고 라바백의 스커트화나 튜브형 플리츠 실루엣처럼 이번에 등장한 형태들이 Karlsson이 말한 "진화하는 캐릭터"로 자리를 잡을지다. 브랜드가 스스로 밝혔듯 Avavav의 세계는 매 시즌 전부 리셋되는 대신 조금씩 쌓여가는 방식으로 바뀌었으니, 다음 컬렉션에서 이번 피스들이 색이나 소재만 바뀐 채 변형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 전환이 일회성 실험이었는지 실제 방향 전환이었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더 궁금한 지점은 퍼포먼스라는 장치 없이도 Avavav가 기존만큼의 화제성과 판매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룩북과 컬렉션 이미지는 브랜드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다음 시즌 공개 때 이번 실루엣들의 흔적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이 브랜드를 지켜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소란으로 이름을 알린 브랜드가 침묵 속에서도 옷만으로 설득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다음 시즌의 진짜 관전 포인트다. 특히 라바백이 가방이라는 틀을 벗어나 스커트로 번져간 것처럼, 하나의 형태가 다른 카테고리로 건너가는 방식 자체가 Avavav만의 문법으로 굳어질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