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 주인공 자리, 옷에서 신발로 넘어가다
구두와 스니커즈가 컬렉션의 중심에 섰다
2027년 봄여름 컬렉션이 순서대로 공개되는 지금, 런웨이를 지배하는 것은 뜻밖에도 옷이 아니라 신발이다. 매 시즌 완성도를 높여온 디자이너들이 이번엔 발끝으로 눈을 돌렸고, 그 결과 신발은 코디를 마무리하는 소품에서 컬렉션 전체의 메시지를 압축하는 주인공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프코어 소재와 화려한 가운이 한 무대 위에서 공존하는, SS27 특유의 극단적 대비 속에서도 신발만큼은 모든 브랜드가 공통으로 힘을 준 지점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실용성을 강조하던 이전 시즌들과 달리, 이번엔 조각 작품에 가까운 형태와 소재 실험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면서, 업계 안팎에서 신발이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옷이 만들어내는 무드보다 발끝 하나가 먼저 화제를 만드는 시즌이라는 점에서, 이번 SS27은 신발이라는 물성 자체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시즌 런웨이의 신발은 크게 두 갈래로 갈린다. 한쪽에는 발레 플랫과 시스루 레이스 디테일, 소녀적인 장식이 만들어내는 노스탤지어와 유년기적 판타지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과장된 실루엣과 예상하지 못한 소재 조합으로 완성한 날카로운 테일러링이 자리한다. 한 시즌 안에 상반된 감성이 동시에 힘을 받는 구조 자체가 이례적이다. 구체적으로 KNWLS는 새틴 소재에 리본 장식을 얹은 힐과 부츠에 동그란 나무 밑창을 결합해, 봄이라는 계절감을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냈다. 부드러운 새틴과 단단한 나무 밑창을 한 켤레 안에 함께 놓는 방식은, 소재를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충돌시켜 오히려 존재감을 키우는 이번 시즌의 문법을 잘 보여준다. Susan Fang을 비롯해 Sandy Liang, AREA, UGG, Campillo 등도 각자의 시그니처를 신발에 담아냈다. 여기에 협업 스니커즈가 여전히 런웨이의 한 축을 차지하고, 조형성이 강한 스컬프처럴 힐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신발이 액세서리가 아니라 컬렉션의 서사를 이끄는 장치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이번 시즌의 가장 큰 변화다.
왜 지금인가
패션위크마다 신발이 화제가 된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다수의 브랜드가 동시에 신발에 서사적 무게를 싣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배경에는 몇 가지 흐름이 겹쳐 있다. 먼저 협업 스니커즈 시장이 몇 시즌째 식지 않으면서, 신발 자체가 브랜드 정체성을 압축해 보여주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SNS 피드에서 옷 전체 룩보다 신발 클로즈업이 더 빠르게 소비되는 흐름도 무시하기 어렵다. 발끝 하나로 완성되는 이미지가 공유되기 쉽기 때문에,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신발에 힘을 주는 것이 곧 노출 전략이 되는 셈이다. 또한 노스탤지어와 하이퍼페미닌 장식이 동시에 부상한 것은 최근 몇 시즌 이어진 Y2K·발레코어 흐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고, 여기에 맞서듯 등장한 과장된 실루엣과 텍스처 실험은 지나치게 부드러워진 무드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한다. 결국 이번 시즌 신발의 부상은 한 브랜드의 우연한 선택이 아니라, 협업 스니커즈의 상업적 성공과 SNS 소비 방식, 상반된 감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시장 분위기까지 여러 힘이 동시에 신발이라는 카테고리로 모인 결과에 가깝다.
다음에 볼 것
아직 공개될 SS27 컬렉션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신발을 둘러싼 이번 흐름이 시즌 후반까지 이어질지가 먼저 관전 포인트다. 지금까지 드러난 흐름만 보아도 노스탤지어 계열과 조각적 실루엣 계열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앞으로 공개될 브랜드들이 어느 쪽에 무게를 싣는지에 따라 이번 시즌 신발 트렌드의 최종 그림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KNWLS처럼 소재를 이질적으로 결합하는 시도가 늘어날지, 아니면 협업 스니커즈처럼 이미 검증된 문법이 계속 우위를 지킬지도 지켜볼 지점이다. 무엇보다 이 흐름이 실제 매장 제품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지금 런웨이에서 강조된 조각적 형태와 소재 실험이 내년 봄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단순화되어 소비자 앞에 놓일지가 이번 시즌 신발 이야기의 다음 장이 될 것이다. 발레 플랫과 스컬프처럴 힐 중 어느 쪽이 먼저 거리로 내려오는지도 함께 지켜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