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3 · FRI SEOUL VOL.02 / NO.10
Search Letter
delay″
Unbound Visions, Inspired Living.
Beauty Health Technology Gastronomy Culture Dispatches
2026.10.23
SearchLetter
delay″
Beauty Health Technology Gastronomy Culture Dispatches
← Culture 2026.09.20 5 min read Irang 글 · 편집부
Index
Culture · Close Look

담배 연기와 랩퍼가 채운 런던의 신인 무대

패션이스트 SS27, 신인의 실험에 쏠린 시선

이번 주 런던 남쪽 매너 플레이스(Manor Place)에서 열린 패션이스트(Fashion East) SS27 쇼는 오랜만에 패션계 바깥의 얼굴들을 프론트로우로 끌어들였다. 랩퍼 센트럴 씨(Central Cee)가 직접 자리를 채웠고, 그 옆에는 모델 팔로마 엘세서(Paloma Elsesser), 배우 사브리나 엘바(Sabrina Elba), 방송인 미키타 올리버(Miquita Oliver)가 나란히 앉았다.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해온 오랜 역사의 인큐베이터가 음악·영화·방송을 넘나드는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무대가 더 이상 업계 내부자만의 행사가 아니라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이번 시즌은 신구 조화가 뚜렷했다. 이미 이름을 알린 야체크 글레바(Jacek Gleba)와 트레이스라인 프랫(Traiceline Pratt)의 고야고마(GOYAGOMA)가 돌아왔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SM)를 갓 졸업한 신인 메메(Mé Mé)가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시즌의 화제는 단연 메메였다. 광둥 출신인 이 디자이너는 올해 초 CSM 석사 졸업 컬렉션으로 이미 업계의 시선을 붙잡은 바 있는데, 이번 상업 데뷔 무대는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시그니처는 담배 연기다. 모델들은 가짜 말보로를 입에 물고 런웨이를 걸었고, 실제 연기 대신 뻣뻣한 흰색 그물망을 뭉쳐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냈다. 무대에 실제 연기를 채우는 대신 소재로 '연기라는 이미지'를 조각해낸 셈이다. 여기에 눈을 가리는 새장 모양의 베일, 그릇을 뒤집어 쓴 듯한 모자, 풍선껌 색의 블루머가 더해지면서 실루엣은 장난스러우면서도 기이한 인상을 남겼다. 이는 단순히 '힙한 이미지'를 파는 것이 아니라, 흡연이라는 오래된 하위문화적 제스처를 소재의 물성으로 번역해낸 접근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담배 연기는 청춘 하위문화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된 이미지이지만, 이를 직접적 연출이 아니라 조형적 은유로 다뤘다는 점이 이 신인의 차별점으로 꼽힌다.

왜 지금인가

패션이스트가 신인을 키워온 방식은 잘 알려져 있다. 매 시즌 소수의 디자이너에게 쇼 제작비와 무대를 지원하고, 그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실험을 허락한다. 야체크 글레바와 고야고마처럼 한 번 무대에 섰던 이름이 다시 초대받는 구조는, 이 플랫폼이 반짝 이슈보다 장기적으로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무대에 랩퍼가 프론트로우를 채우는 장면이 겹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근 몇 시즌 런던 패션위크는 순수 패션 인사이더의 행사에서 음악·스트리트 문화와 겹치는 자리로 성격이 바뀌어 왔고, 센트럴 씨처럼 이미 자체 팬덤을 가진 뮤지션이 신인 디자이너 쇼에 등장하는 것은 그 흐름을 보여주는 구체적 장면이다. 대형 브랜드들이 셀러브리티 캐스팅에 막대한 비용을 쓰는 것과 달리, 이런 신인 무대는 셀러브리티가 자발적으로 관심을 보였을 때 오히려 더 큰 신뢰를 얻는다. 돈이 아니라 취향으로 움직였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메메 같은 신인이 담배 연기라는 다소 위험하고 낡은 소재를 다시 꺼내든 것도, 완성된 브랜드 이미지보다 개인의 실험을 여전히 우선하는 이 플랫폼의 성격과 맞물려 있다.

다음에 볼 것

패션이스트를 거쳐간 디자이너들이 이후 독립 브랜드로 자리 잡거나 대형 하우스에 영입된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메메가 이번 데뷔 무대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담배 연기라는 시그니처를 한 시즌짜리 임팩트로 소비하고 끝낼지, 아니면 소재와 실루엣을 발전시켜 다음 시즌까지 이어갈 정체성으로 굳힐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야체크 글레바와 고야고마 역시 이번이 두 번째 이상의 참가인 만큼, 이들이 이번 시즌에 어떤 방향 전환을 보여줬는지도 함께 비교해볼 만하다. 프론트로우에 앉았던 센트럴 씨와 팔로마 엘세서 같은 인물들이 실제로 이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지, 즉 무대 위 관심이 실제 착용과 협업으로 이어지는지도 이 흐름을 계속 따라가야 할 이유다. 런던 패션위크의 다른 일정과 맞물려, 신인 무대에서 포착된 이런 실험적 제스처들이 이후 메인스트림 컬렉션에 얼마나 흡수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Central CeeFashion EastGalleryManor PlaceLondonPaloma Elsesser
delayseconds · 2026.09.20
Read next
Culture
런던이 주목한 '완벽한 아내'를 부수는 방식
Culture
택배 상자에 손을 얹은 로봇, 물류를 다시 만지다
Culture
깃털 대신 공기, 노스페이스가 꺼낸 60주년 실험복
d″
이 기사가 좋았다면, 월 1회 레터로 받아보세요.
Subscribe
← Culture

담배 연기와 랩퍼가 채운 런던의 신인 무대

패션이스트 SS27, 신인의 실험에 쏠린 시선

2026.09.20 · 5 min · Irang

이번 주 런던 남쪽 매너 플레이스(Manor Place)에서 열린 패션이스트(Fashion East) SS27 쇼는 오랜만에 패션계 바깥의 얼굴들을 프론트로우로 끌어들였다. 랩퍼 센트럴 씨(Central Cee)가 직접 자리를 채웠고, 그 옆에는 모델 팔로마 엘세서(Paloma Elsesser), 배우 사브리나 엘바(Sabrina Elba), 방송인 미키타 올리버(Miquita Oliver)가 나란히 앉았다.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해온 오랜 역사의 인큐베이터가 음악·영화·방송을 넘나드는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무대가 더 이상 업계 내부자만의 행사가 아니라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이번 시즌은 신구 조화가 뚜렷했다. 이미 이름을 알린 야체크 글레바(Jacek Gleba)와 트레이스라인 프랫(Traiceline Pratt)의 고야고마(GOYAGOMA)가 돌아왔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SM)를 갓 졸업한 신인 메메(Mé Mé)가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시즌의 화제는 단연 메메였다. 광둥 출신인 이 디자이너는 올해 초 CSM 석사 졸업 컬렉션으로 이미 업계의 시선을 붙잡은 바 있는데, 이번 상업 데뷔 무대는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시그니처는 담배 연기다. 모델들은 가짜 말보로를 입에 물고 런웨이를 걸었고, 실제 연기 대신 뻣뻣한 흰색 그물망을 뭉쳐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냈다. 무대에 실제 연기를 채우는 대신 소재로 '연기라는 이미지'를 조각해낸 셈이다. 여기에 눈을 가리는 새장 모양의 베일, 그릇을 뒤집어 쓴 듯한 모자, 풍선껌 색의 블루머가 더해지면서 실루엣은 장난스러우면서도 기이한 인상을 남겼다. 이는 단순히 '힙한 이미지'를 파는 것이 아니라, 흡연이라는 오래된 하위문화적 제스처를 소재의 물성으로 번역해낸 접근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담배 연기는 청춘 하위문화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된 이미지이지만, 이를 직접적 연출이 아니라 조형적 은유로 다뤘다는 점이 이 신인의 차별점으로 꼽힌다.

왜 지금인가

패션이스트가 신인을 키워온 방식은 잘 알려져 있다. 매 시즌 소수의 디자이너에게 쇼 제작비와 무대를 지원하고, 그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실험을 허락한다. 야체크 글레바와 고야고마처럼 한 번 무대에 섰던 이름이 다시 초대받는 구조는, 이 플랫폼이 반짝 이슈보다 장기적으로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무대에 랩퍼가 프론트로우를 채우는 장면이 겹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근 몇 시즌 런던 패션위크는 순수 패션 인사이더의 행사에서 음악·스트리트 문화와 겹치는 자리로 성격이 바뀌어 왔고, 센트럴 씨처럼 이미 자체 팬덤을 가진 뮤지션이 신인 디자이너 쇼에 등장하는 것은 그 흐름을 보여주는 구체적 장면이다. 대형 브랜드들이 셀러브리티 캐스팅에 막대한 비용을 쓰는 것과 달리, 이런 신인 무대는 셀러브리티가 자발적으로 관심을 보였을 때 오히려 더 큰 신뢰를 얻는다. 돈이 아니라 취향으로 움직였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메메 같은 신인이 담배 연기라는 다소 위험하고 낡은 소재를 다시 꺼내든 것도, 완성된 브랜드 이미지보다 개인의 실험을 여전히 우선하는 이 플랫폼의 성격과 맞물려 있다.

다음에 볼 것

패션이스트를 거쳐간 디자이너들이 이후 독립 브랜드로 자리 잡거나 대형 하우스에 영입된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메메가 이번 데뷔 무대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담배 연기라는 시그니처를 한 시즌짜리 임팩트로 소비하고 끝낼지, 아니면 소재와 실루엣을 발전시켜 다음 시즌까지 이어갈 정체성으로 굳힐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야체크 글레바와 고야고마 역시 이번이 두 번째 이상의 참가인 만큼, 이들이 이번 시즌에 어떤 방향 전환을 보여줬는지도 함께 비교해볼 만하다. 프론트로우에 앉았던 센트럴 씨와 팔로마 엘세서 같은 인물들이 실제로 이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지, 즉 무대 위 관심이 실제 착용과 협업으로 이어지는지도 이 흐름을 계속 따라가야 할 이유다. 런던 패션위크의 다른 일정과 맞물려, 신인 무대에서 포착된 이런 실험적 제스처들이 이후 메인스트림 컬렉션에 얼마나 흡수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Central CeeFashion EastGalleryManor PlaceLondonPaloma Elsesser
delayseconds · 2026.09.20
Read next
Culture
런던이 주목한 '완벽한 아내'를 부수는 방식
Culture
택배 상자에 손을 얹은 로봇, 물류를 다시 만지다
Culture
깃털 대신 공기, 노스페이스가 꺼낸 60주년 실험복
delayseconds
Unbound Visions, Inspired Living..
얽매이지 않는 시선, 영감을 주는 삶
Beauty Health Technology
Gastronomy Culture Dispatches
LetterSearchFAQRSS
© 2026 delayseconds The mark uses the double prime ″ (U+2033)

바로가기 등록하시면, 더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