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2 · FRI SEOUL VOL.02 / 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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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bound Visions, Inspired Living.
Beauty Health Technology Gastronomy Culture Dispat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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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 2026.10.14 6 min read Irang 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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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Close Look

몸이 건축이 되는 밤, 베를린 SKINDEEP

피 흘리는 퍼포먼스가 공간을 재정의하다

베를린 노이쾰른 외곽의 1,100제곱미터 창고 하우스 데어 비지오네레(Haus der Visionäre)에서 지난 10월 1일 저녁 6시 30분, 몸과 건축이 하나로 얽히는 밤이 열렸다. 공연과 사운드, 공간 설치를 한 무대에 섞어낸 새 퍼포먼스 나이트 SKINDEEP은 공간 디자이너 휴 글리슨(Hugh Gleeson)과 협업자 gh0re.grl, 루크 태커베리(Luke Tackaberry)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다. 셋은 창고를 그저 설치물로 채우는 전시 방식 대신, 관객의 발걸음과 숨을 참는 순간까지 설계 안에 포함시킨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만들려 했다고 밝혔다. 배꼽 주위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군중 사이로 걸어 들어온 퍼포머가 허리에 기타를 매단 채 말총 활로 현을 긋고, 뒤이어 바이브레이터를 악기에 가져다 대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이질적이지 않게 흘러갔다고 전해진다. 보도 사진만으로도 이 밤이 관람하는 공연이 아니라 함께 걸어 들어가는 공연이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같은 공간 안에서 또 다른 퍼포머가 "슬픔의 복수형은 우리"라고 말하며 "우리가 기록이, 증인이, 잊지 않는 존재가 되자"고 되뇌는 순간, 객석과 무대를 가르던 선은 이미 지워진 뒤였다.

무엇이 달라졌나

SKINDEEP을 지금까지의 퍼포먼스 나이트와 구분 짓는 것은 설치물의 숫자가 아니라 역할이다. 창고 안에는 네 개의 대형 설치물이 배치돼 하나의 경기장 같은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그 중심에는 6미터 너비의 강철 구조물이 사람 손으로 직접 깎아 1밀리미터 두께로 날을 세운 스파이크 열두 개 위에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 있다. 그 위, 공중에는 디제이 부스가 매달려 있어 음악을 트는 사람조차 관객과 같은 긴장 위에 놓인다. 바닥이 아니라 스파이크 끝에 구조물을 세우는 선택은, 이 공간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위태로움을 관객에게 직접 체감시키려는 설계다. 이 구조를 맡은 글리슨은 평소 착용 가능한 건축을 실험하는 작가로, 몸에 직접 걸칠 수 있는 구조물을 통해 일상적 자기 표현의 규범에 저항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가 이번에 끌어온 참고점은 미셸 푸코와 미셸 드 세르토의 공간과 권력 이론으로, 공간이 어떻게 몸의 움직임과 권력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전시가 아니라 체험으로 바꿔놓은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가수 트레이스 폴리를 비롯해 샬바 니크바슈빌리, 다프니 크라주디, 매클레인 블랙 등 퍼포머들은 설치물 사이를 오가며 관객을 둘러싸는 방식으로 공연을 전개했고, 그 결과 객석과 무대를 가르던 경계 자체가 사라졌다.

왜 지금인가

베를린은 오랫동안 테크노 클럽 문화의 수도로 불려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정체성은 음악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쪽으로 넓어지고 있다. 클럽과 갤러리, 퍼포먼스 아트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몸을 직접 쓰는 작업들이 다시 주목받는 흐름 속에서, SKINDEEP은 그 교차점에 정확히 자리를 잡는다. 디제이 부스를 스파이크 위 구조물과 한 공간에 두고, 음악을 트는 행위와 피부에 상처를 내는 행위를 같은 밤 안에 배치한 기획은 클럽이 더 이상 춤만 추는 곳이 아니라는 신호로 읽힌다. 트랜스젠더 보컬리스트인 트레이스 폴리가 드림팝과 매스록을 결합한 퀴어 이별 서사의 음악을 들고 중심에 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면을 통한 간접 경험이 일상이 된 시기를 지나며, 관객들이 다시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공동 체험에 끌리는 경향은 베를린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이 도시의 창고와 공동체가 그런 실험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무대가 되어온 것은 분명하다. 특히 공간을 만드는 사람과 소리를 만드는 사람, 몸을 쓰는 퍼포머가 서로 위아래 없이 동등하게 한 기획 아래 서는 구성 자체가, 지금 이 장면이 왜 하나의 고유한 이름을 달고 다시 등장했는지를 설명해준다. 기존 공연장이 무대와 객석을 분리해온 관습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이 시도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공간을 쓰는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도 읽힌다.

다음에 볼 것

이번 SKINDEEP은 단발성 이벤트로 소개됐지만, 세 기획자의 이력을 보면 이 흐름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글리슨은 착용 가능한 건축이라는 독자적인 작업 영역을 꾸준히 넓혀온 작가이고, 트레이스 폴리는 쾰른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음악가이기 때문에, 이번 무대에서 맺어진 협업이 다른 도시나 다른 형태로 다시 이어질 여지가 충분하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하우스 데어 비지오네레가 앞으로도 이런 복합 공연을 계속 유치하는지, 그리고 SKINDEEP이라는 이름이 다음 에디션으로 이어지는지를 지켜볼 만하다. 또한 1밀리미터 스파이크 위에 강철 구조물을 올리는 방식처럼, 안전과 위협 사이의 경계를 소재로 삼는 공간 설계가 다른 퍼포먼스 기획에도 번져나갈지도 함께 눈여겨볼 지점이다. 무엇보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건, 퍼포먼스 아트가 더 이상 화이트큐브 안에 머물지 않고 클럽의 밤 시간과 몸이 감수하는 위험을 끌어들이며 스스로의 문법을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에디션이 실제로 열린다면, 이번보다 더 많은 도시의 관객이 피 흘리는 몸과 스파이크 위의 건축을 직접 걸어 들어가며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고, 그때 이 실험이 일회성 해프닝이었는지 하나의 새로운 장르였는지가 비로소 가려질 것이다.

SKINDEEP GalleryTrace PollyI’vePollyLetSome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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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건축이 되는 밤, 베를린 SKINDEEP

피 흘리는 퍼포먼스가 공간을 재정의하다

2026.10.14 · 6 min · Irang

베를린 노이쾰른 외곽의 1,100제곱미터 창고 하우스 데어 비지오네레(Haus der Visionäre)에서 지난 10월 1일 저녁 6시 30분, 몸과 건축이 하나로 얽히는 밤이 열렸다. 공연과 사운드, 공간 설치를 한 무대에 섞어낸 새 퍼포먼스 나이트 SKINDEEP은 공간 디자이너 휴 글리슨(Hugh Gleeson)과 협업자 gh0re.grl, 루크 태커베리(Luke Tackaberry)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다. 셋은 창고를 그저 설치물로 채우는 전시 방식 대신, 관객의 발걸음과 숨을 참는 순간까지 설계 안에 포함시킨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만들려 했다고 밝혔다. 배꼽 주위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군중 사이로 걸어 들어온 퍼포머가 허리에 기타를 매단 채 말총 활로 현을 긋고, 뒤이어 바이브레이터를 악기에 가져다 대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이질적이지 않게 흘러갔다고 전해진다. 보도 사진만으로도 이 밤이 관람하는 공연이 아니라 함께 걸어 들어가는 공연이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같은 공간 안에서 또 다른 퍼포머가 "슬픔의 복수형은 우리"라고 말하며 "우리가 기록이, 증인이, 잊지 않는 존재가 되자"고 되뇌는 순간, 객석과 무대를 가르던 선은 이미 지워진 뒤였다.

무엇이 달라졌나

SKINDEEP을 지금까지의 퍼포먼스 나이트와 구분 짓는 것은 설치물의 숫자가 아니라 역할이다. 창고 안에는 네 개의 대형 설치물이 배치돼 하나의 경기장 같은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그 중심에는 6미터 너비의 강철 구조물이 사람 손으로 직접 깎아 1밀리미터 두께로 날을 세운 스파이크 열두 개 위에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 있다. 그 위, 공중에는 디제이 부스가 매달려 있어 음악을 트는 사람조차 관객과 같은 긴장 위에 놓인다. 바닥이 아니라 스파이크 끝에 구조물을 세우는 선택은, 이 공간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위태로움을 관객에게 직접 체감시키려는 설계다. 이 구조를 맡은 글리슨은 평소 착용 가능한 건축을 실험하는 작가로, 몸에 직접 걸칠 수 있는 구조물을 통해 일상적 자기 표현의 규범에 저항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가 이번에 끌어온 참고점은 미셸 푸코와 미셸 드 세르토의 공간과 권력 이론으로, 공간이 어떻게 몸의 움직임과 권력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전시가 아니라 체험으로 바꿔놓은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가수 트레이스 폴리를 비롯해 샬바 니크바슈빌리, 다프니 크라주디, 매클레인 블랙 등 퍼포머들은 설치물 사이를 오가며 관객을 둘러싸는 방식으로 공연을 전개했고, 그 결과 객석과 무대를 가르던 경계 자체가 사라졌다.

왜 지금인가

베를린은 오랫동안 테크노 클럽 문화의 수도로 불려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정체성은 음악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쪽으로 넓어지고 있다. 클럽과 갤러리, 퍼포먼스 아트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몸을 직접 쓰는 작업들이 다시 주목받는 흐름 속에서, SKINDEEP은 그 교차점에 정확히 자리를 잡는다. 디제이 부스를 스파이크 위 구조물과 한 공간에 두고, 음악을 트는 행위와 피부에 상처를 내는 행위를 같은 밤 안에 배치한 기획은 클럽이 더 이상 춤만 추는 곳이 아니라는 신호로 읽힌다. 트랜스젠더 보컬리스트인 트레이스 폴리가 드림팝과 매스록을 결합한 퀴어 이별 서사의 음악을 들고 중심에 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면을 통한 간접 경험이 일상이 된 시기를 지나며, 관객들이 다시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공동 체험에 끌리는 경향은 베를린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이 도시의 창고와 공동체가 그런 실험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무대가 되어온 것은 분명하다. 특히 공간을 만드는 사람과 소리를 만드는 사람, 몸을 쓰는 퍼포머가 서로 위아래 없이 동등하게 한 기획 아래 서는 구성 자체가, 지금 이 장면이 왜 하나의 고유한 이름을 달고 다시 등장했는지를 설명해준다. 기존 공연장이 무대와 객석을 분리해온 관습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이 시도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공간을 쓰는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도 읽힌다.

다음에 볼 것

이번 SKINDEEP은 단발성 이벤트로 소개됐지만, 세 기획자의 이력을 보면 이 흐름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글리슨은 착용 가능한 건축이라는 독자적인 작업 영역을 꾸준히 넓혀온 작가이고, 트레이스 폴리는 쾰른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음악가이기 때문에, 이번 무대에서 맺어진 협업이 다른 도시나 다른 형태로 다시 이어질 여지가 충분하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하우스 데어 비지오네레가 앞으로도 이런 복합 공연을 계속 유치하는지, 그리고 SKINDEEP이라는 이름이 다음 에디션으로 이어지는지를 지켜볼 만하다. 또한 1밀리미터 스파이크 위에 강철 구조물을 올리는 방식처럼, 안전과 위협 사이의 경계를 소재로 삼는 공간 설계가 다른 퍼포먼스 기획에도 번져나갈지도 함께 눈여겨볼 지점이다. 무엇보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건, 퍼포먼스 아트가 더 이상 화이트큐브 안에 머물지 않고 클럽의 밤 시간과 몸이 감수하는 위험을 끌어들이며 스스로의 문법을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에디션이 실제로 열린다면, 이번보다 더 많은 도시의 관객이 피 흘리는 몸과 스파이크 위의 건축을 직접 걸어 들어가며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고, 그때 이 실험이 일회성 해프닝이었는지 하나의 새로운 장르였는지가 비로소 가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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