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2 · FRI SEOUL VOL.02 / 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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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y Health Technology Gastronomy Culture Dispat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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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 2026.10.13 6 min read Irang 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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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Close Look

H&M이 꺼내든 숫자, 공장의 얼굴을 묻다

생산지의 손을 증명한 15년의 기록

H&M 그룹이 공급망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경영 전략의 핵심 변수로 공식화했다. 눈에 띄는 지점은 추상적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숫자다. 2024년 기준 노동자 권리 프로그램이 750개 공장, 100만 명이 넘는 작업자에게 닿았고, 세계자연기금(WWF)과는 2011년부터 15년 가까이, 유니세프와는 2004년부터 20년 넘게 파트너십을 쌓아왔다는 사실이 한꺼번에 공개됐다. 패스트패션이 '저렴하고 빠르게'라는 한 문장으로만 설명되던 시절과 비교하면, 옷 한 장이 완성되기까지 거쳐 가는 장소와 사람의 서사를 브랜드가 스스로 꺼내 보이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동안 패션 브랜드가 보여준 이미지는 매장과 신상품, 모델이 전부였고 그 옷을 지은 공장과 마을, 거기서 일한 사람의 얼굴은 늘 화면 밖에 있었다. 이 변화를 흔한 ESG 보도자료로 넘기기 전에, 그 안에 담긴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돕는가'를 한 번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옷의 물성을 이루는 것은 원단과 재봉선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지역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같은 티셔츠 한 장도 어느 공장, 어떤 조건의 손을 거쳤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물건이 된다는 사실을, 숫자와 연도로 증명하려는 시도라서 눈길이 간다.

무엇이 달라졌나

H&M이 이번에 공개한 목록은 단일 캠페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대에 쌓인 레이어다. 가장 긴 축은 WWF와의 협력으로, 2011년 물 사용 문제로 시작해 2016년 기후, 2020년 생물다양성까지 의제를 넓혀왔다. 하나의 환경 파트너십이 15년에 걸쳐 주제를 확장해 온 궤적은, 패션 기업의 지속가능성 활동이 일회성 캠페인에서 장기 구조로 넘어가는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니세프와의 협력은 더 오래됐다. 2004년부터 이어진 관계는 최근 유아기 발달(ECD) 프로그램에 약 1,350만 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하는 단계로 들어섰는데, 이는 공장 노동자의 권리를 넘어 그들의 자녀, 즉 다음 세대의 출발선까지 시야를 넓혔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난민 여성을 위한 멘토십에 Tent Partnership for Refugees와 함께 참여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스웨덴에서는 세이브더칠드런·Scifest Africa와 손잡고 STEAM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24년에는 인도에서 노조·정부·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다중 이해관계자 연합체 TiC(Coalition)를 새로 출범시켰다. 결과물을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사결정 테이블 자체에 외부 주체를 들여놓은 구조라는 점이 이전 방식과 가장 다른 지점이다. 과거의 기업 사회공헌이 완성된 결과를 사진 몇 장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다면, 지금 나열된 항목들은 시작 연도와 지속 기간, 참여 주체까지 특정할 수 있는 장기 기록이라는 점에서 성격 자체가 다르다.

왜 지금인가

패션 산업은 옷을 디자인하는 산업이라기보다, 면화를 재배하고 원단을 짜고 봉제하는 지역의 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산업이다. 방글라데시·인도·캄보디아 같은 생산국은 오랫동안 저임금 제조 기지로만 호명됐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브랜드의 의사결정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소비자들이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가'를 구매 기준에 포함시키기 시작하면서, 공급망 끝단의 노동 조건은 더 이상 숨길 수 있는 영역이 아니게 됐다. 동시에 생산국 정부와 노조 역시 다국적 브랜드에 생활임금과 고충 처리 체계를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2024년 인도에서 노조·정부·시민사회가 함께 앉는 TiC 연합체가 출범한 시점이 바로 이 흐름과 겹친다. 경쟁 브랜드들도 비슷한 방향의 공급망 투명성 경쟁에 들어선 지금, 오래 쌓아온 파트너십의 연속성과 구체적 도달 수치를 함께 제시하는 전략은 단발성 선언보다 설득력을 갖기 쉽다. 특히 옷을 고르는 취향의 기준이 디자인과 가격을 넘어 '이 브랜드가 어떤 장소와 어떤 사람을 대하는가'로 확장되는 문화적 전환 속에서, 생산지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쪽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결국 지금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지역사회와 함께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뜻이다.

다음에 볼 것

앞으로 지켜볼 지점은 숫자의 다음 단계다. 750개 공장·100만 명이라는 도달 범위가 내년에는 어느 생산국까지 확장되는지, 그리고 유니세프와 약속한 1,350만 달러 규모의 유아기 발달 지원이 실제로 어떤 지역 어린이들에게 닿는지가 첫 번째 관찰 포인트다. 인도의 TiC 연합체가 노조·정부·시민사회라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주체들을 한 테이블에 앉힌 실험인 만큼, 이 구조가 실제로 생활임금이나 고충 처리 같은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는지도 주목할 대목이다. 난민 여성 멘토십과 STEAM 교육 프로그램처럼 눈에 덜 띄지만 꾸준히 쌓여온 활동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스웨덴 외 다른 생산국으로 확산될지도 지켜볼 만하다. 패션을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만든 사람과 장소의 연속'으로 보는 시각이 이제 막 소비자의 취향 언어로 번역되는 단계라는 점에서, 이런 지역사회 데이터가 앞으로 브랜드를 고르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매장 진열대 뒤에 숨어 있던 공장과 마을이 브랜드 서사의 앞자리로 걸어 나오는 흐름이 다른 패션 기업으로도 번질지, 다음 보고 주기에 나올 수치가 그 답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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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이 꺼내든 숫자, 공장의 얼굴을 묻다

생산지의 손을 증명한 15년의 기록

2026.10.13 · 6 min · Irang

H&M 그룹이 공급망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경영 전략의 핵심 변수로 공식화했다. 눈에 띄는 지점은 추상적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숫자다. 2024년 기준 노동자 권리 프로그램이 750개 공장, 100만 명이 넘는 작업자에게 닿았고, 세계자연기금(WWF)과는 2011년부터 15년 가까이, 유니세프와는 2004년부터 20년 넘게 파트너십을 쌓아왔다는 사실이 한꺼번에 공개됐다. 패스트패션이 '저렴하고 빠르게'라는 한 문장으로만 설명되던 시절과 비교하면, 옷 한 장이 완성되기까지 거쳐 가는 장소와 사람의 서사를 브랜드가 스스로 꺼내 보이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동안 패션 브랜드가 보여준 이미지는 매장과 신상품, 모델이 전부였고 그 옷을 지은 공장과 마을, 거기서 일한 사람의 얼굴은 늘 화면 밖에 있었다. 이 변화를 흔한 ESG 보도자료로 넘기기 전에, 그 안에 담긴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돕는가'를 한 번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옷의 물성을 이루는 것은 원단과 재봉선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지역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같은 티셔츠 한 장도 어느 공장, 어떤 조건의 손을 거쳤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물건이 된다는 사실을, 숫자와 연도로 증명하려는 시도라서 눈길이 간다.

무엇이 달라졌나

H&M이 이번에 공개한 목록은 단일 캠페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대에 쌓인 레이어다. 가장 긴 축은 WWF와의 협력으로, 2011년 물 사용 문제로 시작해 2016년 기후, 2020년 생물다양성까지 의제를 넓혀왔다. 하나의 환경 파트너십이 15년에 걸쳐 주제를 확장해 온 궤적은, 패션 기업의 지속가능성 활동이 일회성 캠페인에서 장기 구조로 넘어가는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니세프와의 협력은 더 오래됐다. 2004년부터 이어진 관계는 최근 유아기 발달(ECD) 프로그램에 약 1,350만 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하는 단계로 들어섰는데, 이는 공장 노동자의 권리를 넘어 그들의 자녀, 즉 다음 세대의 출발선까지 시야를 넓혔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난민 여성을 위한 멘토십에 Tent Partnership for Refugees와 함께 참여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스웨덴에서는 세이브더칠드런·Scifest Africa와 손잡고 STEAM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24년에는 인도에서 노조·정부·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다중 이해관계자 연합체 TiC(Coalition)를 새로 출범시켰다. 결과물을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사결정 테이블 자체에 외부 주체를 들여놓은 구조라는 점이 이전 방식과 가장 다른 지점이다. 과거의 기업 사회공헌이 완성된 결과를 사진 몇 장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다면, 지금 나열된 항목들은 시작 연도와 지속 기간, 참여 주체까지 특정할 수 있는 장기 기록이라는 점에서 성격 자체가 다르다.

왜 지금인가

패션 산업은 옷을 디자인하는 산업이라기보다, 면화를 재배하고 원단을 짜고 봉제하는 지역의 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산업이다. 방글라데시·인도·캄보디아 같은 생산국은 오랫동안 저임금 제조 기지로만 호명됐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브랜드의 의사결정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소비자들이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가'를 구매 기준에 포함시키기 시작하면서, 공급망 끝단의 노동 조건은 더 이상 숨길 수 있는 영역이 아니게 됐다. 동시에 생산국 정부와 노조 역시 다국적 브랜드에 생활임금과 고충 처리 체계를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2024년 인도에서 노조·정부·시민사회가 함께 앉는 TiC 연합체가 출범한 시점이 바로 이 흐름과 겹친다. 경쟁 브랜드들도 비슷한 방향의 공급망 투명성 경쟁에 들어선 지금, 오래 쌓아온 파트너십의 연속성과 구체적 도달 수치를 함께 제시하는 전략은 단발성 선언보다 설득력을 갖기 쉽다. 특히 옷을 고르는 취향의 기준이 디자인과 가격을 넘어 '이 브랜드가 어떤 장소와 어떤 사람을 대하는가'로 확장되는 문화적 전환 속에서, 생산지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쪽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결국 지금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지역사회와 함께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뜻이다.

다음에 볼 것

앞으로 지켜볼 지점은 숫자의 다음 단계다. 750개 공장·100만 명이라는 도달 범위가 내년에는 어느 생산국까지 확장되는지, 그리고 유니세프와 약속한 1,350만 달러 규모의 유아기 발달 지원이 실제로 어떤 지역 어린이들에게 닿는지가 첫 번째 관찰 포인트다. 인도의 TiC 연합체가 노조·정부·시민사회라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주체들을 한 테이블에 앉힌 실험인 만큼, 이 구조가 실제로 생활임금이나 고충 처리 같은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는지도 주목할 대목이다. 난민 여성 멘토십과 STEAM 교육 프로그램처럼 눈에 덜 띄지만 꾸준히 쌓여온 활동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스웨덴 외 다른 생산국으로 확산될지도 지켜볼 만하다. 패션을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만든 사람과 장소의 연속'으로 보는 시각이 이제 막 소비자의 취향 언어로 번역되는 단계라는 점에서, 이런 지역사회 데이터가 앞으로 브랜드를 고르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매장 진열대 뒤에 숨어 있던 공장과 마을이 브랜드 서사의 앞자리로 걸어 나오는 흐름이 다른 패션 기업으로도 번질지, 다음 보고 주기에 나올 수치가 그 답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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