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데이션 50색 시대, 비어 있는 쿨톤 딥 셰이드
셰이드는 늘었지만 언더톤은 그대로였다
파운데이션 매대 앞에 서면 이제 색 이름표가 두 자릿수를 훌쩍 넘는다. 15호짜리 시절은 지나갔고, 요즘은 한 브랜드가 40~50개 셰이드를 늘어놓는 게 기본값이 됐다. 스킨케어 성분을 넣은 K-뷰티 처방부터 피부 톤에 맞춰 색이 스며드는 듯한 발색 기술까지, 파운데이션은 지난 몇 년 사이 메이크업 루틴의 중심으로 확실히 올라섰다. 그런데 그 촘촘해 보이는 스펙트럼 안에서 유독 비어 있는 자리가 있다. 미디움에서 딥 톤으로 갈수록, 그리고 그중에서도 붉은기나 핑크빛이 도는 '쿨 언더톤'으로 갈수록 선택지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페어 톤 소비자는 웜·뉴트럴·쿨을 골고루 고를 수 있는데, 같은 진하기의 딥 톤 소비자는 쿨톤 한 칸만 겨우 채워져 있거나 아예 비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셰이드 개수 자체는 역대 최대치로 늘었는데, 왜 특정 조합만 여전히 좁은 문일까 — 이 물음이 최근 뷰티 업계 안팎에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나
지난 20여 년의 변화 폭을 숫자로 보면 체감이 다르다. 2004년 출시된 메이블린 드림 매트 무스 파운데이션은 셰이드가 단 13개였다. 지금은 펜티 뷰티나 하우스 랩스 같은 브랜드가 최대 50개 안팎의 셰이드를 상시 운영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스펙트럼이 4배 가까이 넓어진 셈이고, 그 사이 K-뷰티발 스킨케어 성분 배합이나 피부에 스며드는 듯한 발색 기술까지 더해지면서 '맞는 색을 찾는 것'과 '피부에 좋은 것을 바르는 것'이 같은 제품 안에서 동시에 만족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이 확장이 모든 방향으로 고르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밝은 톤에는 웜·쿨·뉴트럴이 촘촘히 배열되는 반면, 딥 톤 구간에서는 쿨 언더톤 옵션이 한두 개에 그치거나 웜·뉴트럴로만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즉 셰이드 개수라는 총량 지표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불균형이, 언더톤이라는 축을 하나 더 놓고 보면 뚜렷하게 드러나는 구조다. 브랜드 소개 페이지의 '50 shades' 같은 숫자는 다양성의 증거로 내세워지지만, 그 안을 톤과 언더톤 두 축으로 쪼개 보면 여전히 빈칸이 남는다는 뜻이다.
왜 지금인가
셀러브리티 메이크업 아티스트 맬리 론살은 이 공백을 수요 부족이나 기술적 난이도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업계가 오랫동안 '광채 나는 피부'라는 이미지를 따뜻한 톤과 습관적으로 묶어 온 결과라는 해석이다. 딥 톤 파운데이션을 개발할 때도 웜·뉴트럴 위주로 팔레트를 짜는 관성이 반복되다 보니, 쿨 언더톤을 가진 미디움에서 딥 톤 소비자는 매번 '가장 비슷한 색'으로 타협해 온 셈이다. 이 문제가 지금 다시 조명받는 배경에는 셰이드 인클루시비티 자체가 더 이상 신제품 하나의 마케팅 포인트가 아니라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 있다. 브랜드들이 앞다퉈 40~50개 셰이드를 내놓으며 다양성을 내세우는 지금, 소비자들은 그 다양성이 실제로 언더톤까지 촘촘한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총량은 채웠지만 조합의 밀도는 그대로였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셰이드 매칭에 실패해 온 눈 밝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먼저 감지된 셈이다. 드러그스토어 BB크림부터 세포라의 최신 라인업까지 쓰는 폭이 넓어진 만큼, 비교가 쉬워져 공백도 더 잘 보이게 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에 볼 것
당장 확인할 만한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미 50개 안팎의 셰이드를 운영하는 펜티 뷰티·하우스 랩스 같은 브랜드가 딥 톤 구간의 쿨 언더톤 라인업을 실제로 어떻게 보강하는지, 다른 하나는 K-뷰티 브랜드들이 스킨케어 성분과 발색력을 넘어 언더톤 다양성에서도 존재감을 만들 수 있는지다. 조선미녀처럼 이미 글로벌 뷰티 신에서 주목받는 K-뷰티 브랜드가 이 대화의 한 축으로 소환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셰이드 확장이 몇 개를 내놓느냐의 싸움에서 어떤 조합이 비어 있느냐를 짚어내는 싸움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신제품 론칭 때마다 셰이드 개수뿐 아니라 언더톤별 분포까지 함께 공개하는 브랜드가 늘어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번 문제 제기가 실제로 시장을 움직였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총 셰이드 수만 늘리고 조합의 공백은 그대로 둔다면, 딥 톤이면서 쿨 언더톤인 소비자들의 '언박싱 후 반품' 경험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셰이드 범위를 늘리는 다음 라운드가 숫자 경쟁이 아니라 조합의 빈틈을 메우는 방향으로 가는지, 앞으로 나올 신제품 팔레트가 그 답을 보여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