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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 2026.09.19 5 min read Irang 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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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위크 대신 클럽을 택한 베를린의 여름

3만 명이 몰렸던 브레드앤버터의 기억

2010년대 후반 베를린의 한 여름 주말,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같은 부지로 몰려들었다. 목적지는 패션위크도 록페스티벌도 아닌, 온라인 쇼핑 플랫폼 잘란도(Zalando)가 주최한 '브레드앤버터(Bread&Butter)' 축제였다. 이름만 들으면 업계 관계자용 트레이드쇼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런웨이 쇼와 한정판 컬래버레이션 드롭, DJ세트와 스트리트푸드 부스가 한 부지 안에서 동시에 벌어졌고, 낮의 신제품 발표는 밤이 되면 그대로 애프터파티로 이어졌다. 2017년과 2018년 두 해 연속 각각 3만 명 이상을 끌어모은 이 행사가 지금 다시 회자되는 건 단순한 노스탤지어 때문만은 아니다. 파리나 밀라노의 정통 패션위크가 바이어와 프레스를 위한 폐쇄적 자리였다면, 브레드앤버터는 그 문을 일반 관람객에게 그대로 열어젖힌 드문 사례였다. 패션을 누가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 자체를 이 축제가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브레드앤버터가 특별했던 지점은 참가자 구성에 있다. 이전까지 패션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디자이너 고유의 영역이었지만, 이 축제를 전후로 DJ와 래퍼가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맡는 일이 흔해졌다. 모델은 무대 위에서 옷을 입는 사람에서 럭셔리 브랜드와 직접 협업해 한정판을 만드는 주체로 옮겨갔다. 언더그라운드 클럽 나이트의 감성이 그대로 시즌 컬렉션의 설계도가 되는 흐름도 이 시기에 자리를 잡았다. 축제 구성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런웨이, 한정판 드롭, DJ세트, 스트리트푸드, 애프터파티가 한 프로그램 안에 나란히 배치됐고, 그중 애프터파티는 인디(Indie)가 호스팅을 맡았다. 이전 패션 행사들이 '보여주는 자리'와 '노는 자리'를 분리했던 것과 달리, 브레드앤버터는 이 둘의 경계를 아예 지워버렸다. 관람객이 곧 참여자였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흐려진 자리에서 그날 가장 멋있게 입은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축제의 콘텐츠였다. 기존 트레이드쇼가 바이어의 주문서로 성과를 셌다면, 이 축제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옷차림과 사진이 곧 다음 시즌의 레퍼런스가 되는 구조였다.

왜 지금인가

이 축제가 다시 조명받는 시점이 흥미롭다. 2010년대는 패션·음악·영화·디지털 서브컬처가 서로를 끊임없이 참조하며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이던 시기였고, 창작자의 이력이 무엇이었는지보다 지금 무엇을 만드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브레드앤버터는 그 정서를 가장 압축적으로 구현한 현장이었다. 지금 다시 이 장면을 되짚는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패션 업계가 다시 경계를 허무는 쪽으로 회귀하는 흐름이 자리한다. 스니커 브랜드가 파인다이닝과 협업하고, 뮤지션이 자기 이름을 건 컬렉션을 내는 일이 다시 흔해지면서 업계 바깥에서는 이런 융합을 새로운 현상처럼 이야기하지만, 브레드앤버터를 겪은 세대에게는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이미 10년 전 베를린의 한 여름 주말에 같은 실험이 3만 명 규모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이 축제를 다시 꺼내보는 이유는, 현재의 '경계 없는 패션'이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사실은 순환이라는 걸 보여주는 참조점이 필요해서다. 유행은 되돌아오지만, 그 유행이 처음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는 장소는 흔치 않다. 시장 쪽에서 보면 이유는 더 뚜렷하다. 브랜드 입장에서 컬렉션 하나로 소비자에게 닿는 채널은 갈수록 좁아지는데, 패션·음악·클럽 신을 한 자리에 묶어 실제 관람객 3만 명을 모았던 전례는 지금도 참고할 만한 규모의 성공 사례로 남아 있다.

그 여름이 남긴 것

브레드앤버터는 베를린에서 세 번의 여름 동안만 존재했다. 길지 않은 수명이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이 도시는 유럽 스트리트 패션 신에서 가장 실험적인 무대로 꼽혔다.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가 이 축제와 잘 맞았다는 점도 짚을 만하다. 파리나 밀라노처럼 오랜 패션 위계가 자리 잡은 도시가 아니라, 클럽 문화와 테크노 신이 이미 도시의 정체성으로 굳어 있던 베를린이었기에 패션쇼와 애프터파티를 같은 무게로 놓는 실험이 가능했다. 지금 스트리트웨어와 럭셔리의 협업, 뮤지션 출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럽 음악에서 출발한 컬렉션을 볼 때마다 이 축제를 떠올릴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의 브랜드나 한 시즌의 트렌드가 아니라, 창작자를 가르던 경계 자체를 지운 장면이 먼저 있었고 그 기록이 베를린의 한 여름들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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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위크 대신 클럽을 택한 베를린의 여름

3만 명이 몰렸던 브레드앤버터의 기억

2026.09.19 · 5 min · Irang

2010년대 후반 베를린의 한 여름 주말,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같은 부지로 몰려들었다. 목적지는 패션위크도 록페스티벌도 아닌, 온라인 쇼핑 플랫폼 잘란도(Zalando)가 주최한 '브레드앤버터(Bread&Butter)' 축제였다. 이름만 들으면 업계 관계자용 트레이드쇼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런웨이 쇼와 한정판 컬래버레이션 드롭, DJ세트와 스트리트푸드 부스가 한 부지 안에서 동시에 벌어졌고, 낮의 신제품 발표는 밤이 되면 그대로 애프터파티로 이어졌다. 2017년과 2018년 두 해 연속 각각 3만 명 이상을 끌어모은 이 행사가 지금 다시 회자되는 건 단순한 노스탤지어 때문만은 아니다. 파리나 밀라노의 정통 패션위크가 바이어와 프레스를 위한 폐쇄적 자리였다면, 브레드앤버터는 그 문을 일반 관람객에게 그대로 열어젖힌 드문 사례였다. 패션을 누가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 자체를 이 축제가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브레드앤버터가 특별했던 지점은 참가자 구성에 있다. 이전까지 패션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디자이너 고유의 영역이었지만, 이 축제를 전후로 DJ와 래퍼가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맡는 일이 흔해졌다. 모델은 무대 위에서 옷을 입는 사람에서 럭셔리 브랜드와 직접 협업해 한정판을 만드는 주체로 옮겨갔다. 언더그라운드 클럽 나이트의 감성이 그대로 시즌 컬렉션의 설계도가 되는 흐름도 이 시기에 자리를 잡았다. 축제 구성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런웨이, 한정판 드롭, DJ세트, 스트리트푸드, 애프터파티가 한 프로그램 안에 나란히 배치됐고, 그중 애프터파티는 인디(Indie)가 호스팅을 맡았다. 이전 패션 행사들이 '보여주는 자리'와 '노는 자리'를 분리했던 것과 달리, 브레드앤버터는 이 둘의 경계를 아예 지워버렸다. 관람객이 곧 참여자였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흐려진 자리에서 그날 가장 멋있게 입은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축제의 콘텐츠였다. 기존 트레이드쇼가 바이어의 주문서로 성과를 셌다면, 이 축제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옷차림과 사진이 곧 다음 시즌의 레퍼런스가 되는 구조였다.

왜 지금인가

이 축제가 다시 조명받는 시점이 흥미롭다. 2010년대는 패션·음악·영화·디지털 서브컬처가 서로를 끊임없이 참조하며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이던 시기였고, 창작자의 이력이 무엇이었는지보다 지금 무엇을 만드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브레드앤버터는 그 정서를 가장 압축적으로 구현한 현장이었다. 지금 다시 이 장면을 되짚는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패션 업계가 다시 경계를 허무는 쪽으로 회귀하는 흐름이 자리한다. 스니커 브랜드가 파인다이닝과 협업하고, 뮤지션이 자기 이름을 건 컬렉션을 내는 일이 다시 흔해지면서 업계 바깥에서는 이런 융합을 새로운 현상처럼 이야기하지만, 브레드앤버터를 겪은 세대에게는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이미 10년 전 베를린의 한 여름 주말에 같은 실험이 3만 명 규모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이 축제를 다시 꺼내보는 이유는, 현재의 '경계 없는 패션'이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사실은 순환이라는 걸 보여주는 참조점이 필요해서다. 유행은 되돌아오지만, 그 유행이 처음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는 장소는 흔치 않다. 시장 쪽에서 보면 이유는 더 뚜렷하다. 브랜드 입장에서 컬렉션 하나로 소비자에게 닿는 채널은 갈수록 좁아지는데, 패션·음악·클럽 신을 한 자리에 묶어 실제 관람객 3만 명을 모았던 전례는 지금도 참고할 만한 규모의 성공 사례로 남아 있다.

그 여름이 남긴 것

브레드앤버터는 베를린에서 세 번의 여름 동안만 존재했다. 길지 않은 수명이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이 도시는 유럽 스트리트 패션 신에서 가장 실험적인 무대로 꼽혔다.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가 이 축제와 잘 맞았다는 점도 짚을 만하다. 파리나 밀라노처럼 오랜 패션 위계가 자리 잡은 도시가 아니라, 클럽 문화와 테크노 신이 이미 도시의 정체성으로 굳어 있던 베를린이었기에 패션쇼와 애프터파티를 같은 무게로 놓는 실험이 가능했다. 지금 스트리트웨어와 럭셔리의 협업, 뮤지션 출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럽 음악에서 출발한 컬렉션을 볼 때마다 이 축제를 떠올릴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의 브랜드나 한 시즌의 트렌드가 아니라, 창작자를 가르던 경계 자체를 지운 장면이 먼저 있었고 그 기록이 베를린의 한 여름들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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